새벽 4시의 도쿄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네온사인은 꺼지고, 거리는 고요하지만 한 곳만은 예외다. 바로 츠키지 시장. 이곳에서는 도시가 잠든 사이에도 치열한 삶이 펼쳐진다. 참치 경매가 시작되기 전, 나는 이 거대한 생명력의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도쿄의 심장이었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 새벽 4시, 도시의 심장이 뛰기 시작하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새벽 3시 30분. 호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쿄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도쿄가 있다는 것을.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지하철을 타고 츠키지로 향했다. 전철 안에는 나처럼 이른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모두들 어딘가 급하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분명 츠키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표정에서 나는 이미 무언가 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츠키지시장역에서 내려 시장으로 향하는 길,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트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4시인데도 이곳은 이미 하루가 시작된 것 같았다. 시장 입구에 다가갈수록 들려오는 소음들 - 트럭 엔진소리, 사람들의 외침, 얼음 부딪히는 소리들이 교향곡처럼 어우러졌다. 이 모든 것이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숨쉬는 소리 같았다. 츠키지 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를 먹여 살리는 심장이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펼쳐진 광경은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다. 수백 마리의 참치들이 줄지어 놓여있고, 그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생선을 살펴보는 중간상들. 이들의 눈빛에서는 수십 년간 쌓아온 내공과 경험이 묻어났다. 하나의 참치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거래되는 이곳에서, 단 한 번의 판단 실수가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하고 집중되어 있었다. 새벽 4시의 츠키지에서 나는 진짜 프로의 세계를 목격하고 있었다.
🐟 참치 경매, 인생을 건 한 순간의 승부
드디어 참치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사의 빠른 일본어가 시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중간상들은 미세한 손짓으로 입찰에 참여한다. 이 모든 과정이 번개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몇 초 만에 수백만 원짜리 참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관광객인 나조차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감이 넘쳤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것은 단순한 생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부들의 목숨을 건 조업 결과물이었고, 중간상들의 경험과 직감이 담긴 투자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소중한 음식이었다. 한 중간상 아저씨가 거대한 참치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수십 년간 이 일을 해온 베테랑의 고뇌가 읽혔다. 참치의 꼬리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고, 색깔을 확인하고, 심지어 냄새까지 맡아보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정신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일본 장인문화의 진수가 아닐까.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이 바탕이 된 거래. 경매가 끝난 후 그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낙찰받은 참치를 바라보았다. 아마 오늘도 좋은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얼굴에 써있었다. 경매장 한편에서는 이미 거래가 끝난 참치들을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칼 하나로 거대한 참치를 순식간에 부위별로 나누는 기술은 정말 예술이었다. 몇십 년간 같은 일을 해온 장인들의 손놀림은 기계보다도 정확했다. 이들에게는 참치의 어느 부위가 어떤 맛을 낼지, 어떤 요리에 적합할지가 손에 익어있었다. 칼질 하나하나에 경험과 기술이 녹아있었고, 그 결과물은 도쿄 최고의 스시집들로 향할 것이다. 새벽 5시, 참치 경매가 끝나갈 무렵 나는 깨달았다.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단순한 장사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이 새벽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 새벽 식사, 가장 신선한 맛과 가장 진실한 사람들
경매 구경을 마치고 나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 왔다. 바로 츠키지 시장에서의 새벽 식사 시간. 시장 안팎으로 즐비한 작은 식당들에서는 이미 하루 일을 시작한 시장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작은 초밥집을 선택했다. 카운터에 앉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였다. 관광지의 화려한 스시집과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는 진짜 일하는 사람들이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곳이었다. 스시 장인 아저씨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방금 전 경매에서 낙찰된 참치로 만든 초밥을 내 앞에 놓아주셨다. 첫 입에 느껴진 그 맛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런 신선함과 감칠맛을 어디에서 느껴본 적이 있을까. 입에서 살살 녹는 참치의 부드러움과 깊은 맛은 마치 바다 그 자체를 맛보는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시장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이게 진짜 츠키지 맛이야. 관광객들이 가는 유명한 집들도 좋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이런 맛이 진짜지."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식당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들을 들어보니 모두 그날의 시세와 좋은 생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늘 오오마 참치 품질이 정말 좋더라", "새벽에 들어온 전어가 싱싱해", "이번 주 연어 값이 많이 올랐네" 같은 대화들.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매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하루가 도쿄 천만 시민들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간단한 아침식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시작된 하루가 본격적인 아침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시장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인 경매가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뒤돌아서 츠키지 시장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낯설고 혼란스러웠던 이 곳이 이제는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의 진실함과 성실함,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도쿄의 새벽 4시에서 나는 진짜 삶의 모습을 배웠다.